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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시먼스의 '소멸의 아름다움' 에서 손병주 200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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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hangshin.org/bbs/bbsView/67/764074

* 제가 정말 감명깊게 읽은 글, 소개합니다.





 지금 나는 팔이 약해져서 코를 풀기 위해 휴지 한 장 들어올리는 것조차 힘겹다.

 하지만 아직은 내 아들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목초지 위를 맴도는 매를 바라볼 때

그 아이 곁에 앉아 있을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머물러 있고 싶은 세계다.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알아야 하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의 신비 속에서

퐁요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병에 걸린 덕분에 나의 행동을 신성한 맥락 안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서 어제 했던 일도 오늘은 갑자기 성스러운 행동으로 느껴진다.


 수건으로 아이 얼굴을 닦아주는 일도

어제는 다음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해치워야 하는 귀찮은 허드렛일,

앞으로 할 일이 열 가지나 쌓여 있는데 공연히 손만 번거롭게 하는 일거리였지만,

이제는 이 아이의 얼굴을 닦아 주는 것,

이 신비로운 의식에 참여하는 것,


그런 식으로 누군가와 내 삶을 나누어 갖는 것이

얼마나 멋진 기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누구나 풀잎에서, 한 방울의 이슬에서, 아이들 눈동자에서, 또는 꽃잎 한 장에서

신을 보라고 권하는 시나 노래나 기도를 들은 적이 있다.

이제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그것은 너무 '쉽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더 어려운 과제는 고통받는 어린이의 눈동자만이 아니라

고통 자체에서 신을 보는 것이다.


해질녘 레드힐 위에 펼쳐진 진홍빛 노을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지만 그 구름을 보는 동안 얼굴에서 모기떼를 쫓아야 하는 데 대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라.


부러진 뼈와 찢어진 가슴에 대해,

우리의 인간다움의 신비를 알려주는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라....


불완전한 것이야말로 우리의 낙원이다.

 



머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 세상과 우리 삶과 우리 자신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질 때

비로소 신을 위해서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책임을 지는 것(responsible)은

민감한 빈응을 보이는 것(responsive), 응답하는 것(respond)이다.

 세 낱말 모두 '약속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spondeo'에 뿌리를 두고 있다.

 're'와 'spond'를 합한 'respond'는

그러므로 처음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약속하는 것,

관계를 처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들어올 때 맨 먼저 하는 행동은 숨을 들이마시는 것,

즉 세상을 이루고 있는 물질을 우리 몸 속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최초의 날숨과 함께 우리 자신의 일부를 세상에 돌려준다.


 우리가 세상을 통과할 때, 세상도 우리를 통과한다.

모든 호흡은 반응이다.

다시 말해서 그 최초의 약속을 갱신하는 것이다. 


세상을 선택하는 것은 곧 우리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것,  

사랑을 그 근원까지 따라가는 것,

시작도 끝도 없는 우리 존재의 그 근저에서 편안히 쉬는 것이다.


 세상의 사랑으로 움직이는 우리는 모든 용기를 내어 신성한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지방을 넘어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마침내 세계의 신성한 핵심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지금까지 줄곧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 필립 시먼스의 '소멸의 아름다움' 에서- 



 * 이 책의 저자인 필립 시먼스는  병을 앓고 있는 미국의 영문학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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